시작하기 전
이 드라마 내용의 제목은 스물다섯 스물하나 입니다.
자세한 후기는 맨 아래의 내용을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용
맑은 날씨였다. 구름이 해를 삼켜 버린 듯 가려져서 햇빛에 눈이 부시지도 않을 정도로 밝았다.
"체온 측정 부탁드립니다."
어디선가 체온측정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이제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멘트였다. 옛날 같았으면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사람을 수상하게 여겼겠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았다. 작년인 2020년부터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필수로 쓰고 다녀야 했고, 이제는 오히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더욱 수상한 사람들로 볼 정도였다.
"손 소독 해주시구요."
오늘은 민채가 그토록 준비한 발레를 선보이는 날이다. 희도가 픽업해준 차에서 내린 민채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알고 있는 희도가 자신의 딸 민채의 어께에 손을 올리며 다독이듯 평가가 예정되어 있을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QR코드 체크 해주시고, 안심콜 전화 해주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 서 있는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체온측정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며 손 소독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체온측정 카메라와 손소독제 등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만큼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체온 측정 부탁드립니다, 손 소독도 해주세요."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라 보호자 입장이 제한됩니…어?"
민채는 반복되는 안내원 멘트를 들으며 앞 사람이 지나가자마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STAFF'라는 문구가 적힌 연두색 조끼를 입은 안내원이 갑자기 안내를 멈추었고, 민채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희도 선수 아니세요?"
안내원은 민채의 뒤에 서 있는 희도를 안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분명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덮고 있어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텐데도 용케 희도를 알아본 듯 했다.
"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런데에서…."
희도가 안내원의 질문에 웃으며 인사하자, 안내원은 그녀를 만난 것이 기쁜지 상기된 얼굴로 반겼다. 하지만 뒤쪽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금방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희도는 안내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앞에 멀뚱히 서있는 민채를 보고는 눈높이를 맞추었다.
"들어가. 엄마 차에서 휴대폰 좀 보고 있을게. 네가 발레를 얼만큼 좋아하는지만 보여주고 와."
희도가 민채의 어께를 토닥이며 마저 말을 이었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버려? 1등 하려고 온 건데."
민채는 희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곳에 온 것은 분명 1등을 하기위해서 온 거지, 놀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채에게 있어선 1등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1등하는 거 안 중요해."
하지만 희도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런 민채는 희도를 알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엄마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설득력 없다. ……치."
희도에게 투덜거리며 뒤돌아 선 민채는 바로 앞에 보이는 손소독제를 받고 손으로 문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 위에 예쁜 발레복을 입은 소녀가 우아하게 팔을 벌리며 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양 팔을 날갯짓 해보이며 밝은 미소를 지은 채 춤추듯 동작을 이끌어 나갔고, 그 동작을 지켜보고 있던 심사위원들은 관객석에 한 줄로 나란히 지정되어 있는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위원들이 소녀의 섬세한 동작들이 다소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하기도 했다. 어두운 무대 뒤편에서 여러 차례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도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던 민채는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한숨만이 나왔다. 모든 동작이 끝났는지 소녀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다음은 민채의 차례였지만 민채는 굳건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곧이어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은 참가번호 11번. 연경 중학교 2학년 김민채 학생입니다.
발레슈즈를 신은 발이 들썩였다. 민채는 무대에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원래는 그러려고 온 것이긴 했지만, 방금 전에 무대에서 선보였던 그녀의 춤사위로 인해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1등이 아니면 소용없다는 생각만이 가득차서 무대에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민채 학생?"
한동안 기다리던 뒤쪽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안내원이 민채를 불렀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민채는 돌아보지 않았다.
"김민채 학생 들어가실게요."
꼼짝도 하지 않자 남자 안내원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럼에도 민채는 아무런 요동 없이 앞만을 바라봤다. 결국 안내원이 민채에게 다가섰다.
"김민채 학생."
그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 요동도 없던 민채가 드디어 고개를 돌려 반응을 하자 안내원이 무대 앞을 손짓을 하며 말했다.
"들어가실게요."
민채는 그 손짓을 따라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숨을 들이키더니 도망치듯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비추고 있는 무대가 아닌 깜깜한 어둠속으로 뛰어갔다. 그에 당황한 남자 안내원은 민채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고, 민채를 기다리던 심사위원은 오랫동안 그녀가 나오지 않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곧이어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졌다.
-참가번호 11번 김민채, 불참하였습니다. 다음은 참가번호 12번…….
차안에서 휴대폰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희도가 미소를 뗬다.
-다음은 참가번호 11번. 연경 중학교 2학년 김민채 학생입니다.
민채의 차례를 알리는 내레이션의 안내에 따라 희도의 웃음이 밝아졌다.
"잘해라."
마치 본인이 참가라도 하는 듯이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민채의 모습은 한참을 기다려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의심스러운 말을 하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만이 희도의 귀에 꽂혔다.
-참가번호 11번 김민채, 불참하였습니다……
"김민채!"
아까까지만 해도 예쁘게 차려입었던 민트색 발레복과 발레슈즈는 민채의 오른손에 들린 채였다. 막 건물 밖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오자 희도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민채는 무시할까 하다가 결국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김민채."
차에서 내린 희도가 성이 난 목소리로 다시 민채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고, 바로 앞에 멈춰 서자 민채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 아빠 차타고 갈 테니까, 먼저 가."
민채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기려다 희도의 목소리가 민채의 발을 붙잡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너 지금 포기한 거야?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한 게 무슨 경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만 두고 나온 딸로 인해 속상한 마음으로 한 희도의 말에 민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미 졌어. 최윤서 하는 거 봤을 거 아니야. 어차피 못 이겨."
시무룩해 있는 민채의 표정을 본 희도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건지,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못 이기면 뭐. 못 이기면 어떻게 되는데. 1등 아니면 의미 없어?"
"없어."
하지만 민채는 단호했다. 그런 민채의 말에 희도는 안쓰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민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나 발레 그만 둘래."
그 말을 내뱉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희도의 옆을 지나쳤다. 그런 민채를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멈춰 선 희도는 민채가 발레복과 슈즈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쌩하니 가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높으면서도 낮은 계단을 오르고 꽃줄기가 늘어진 담위에 줄줄이 세워져 있는 예쁜 흰 울타리를 지나자 하얀 대문이 보였다. 그 대문을 넘은 민채의 앞에는 작은 1층짜리 단독주택과 희도의 엄마이자 그녀의 할머니인 재경이 서있었다. 손녀가 찾아온다는 것을 미리 연락받은 재경이 마중 나와 있자 캐리어를 든 민채가 그녀의 앞에 서서 말했다.
"나 가출 했어, 할머니. 여름방학 동안만 있을게."
민채는 아무 대꾸 없는 재경을 지나쳐 캐리어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민채가 당분간 지낼 곳은 지금은 빈 방이지만, 옛날 제 엄마가 머물었던 희도의 방이기도 했다. 민채는 좁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았음에도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그녀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상장들과 메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 친 곳이 결국 엄마 방이네."
옛날 어렸을 적의 희도가 딴 상장들과 메달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민채는 심통이 났다는 듯이 뒤늦게 치이- 하고 투덜댔다.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뒤 거실로 나오자 식탁 위에는 재경이 차려놓은 갖가지 반찬들이 이것저것 올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허기가 진 상태의 민채는 곧바로 재경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고, 민채가 자리에 앉자 재경 역시도 숟가락을 움직이기 시작 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밥과 반찬을 젓가락으로 두어 번 집어먹은 것도 잠시, 재경이 민채를 힐끔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 민채, 발레 그만 두겠다고 했다면서. 뭐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어?”
“사람들은 보통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부드럽게 물어오는 재경의 말에 민채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자 재경은 의외의 말을 하는 민채로 인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 발레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었어? 벌써 5년이나 했잖아.”
또 다시 짧게 생각을 하던 민채는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모르겠어. ……뭐라도 하는 게, 뭐라도 하고 있는 거처럼 보이잖아.
“음, 해야 되지 않는 거 말고. 꿈은 있어?”
“꿈 없다고 말하는 거. 어른들은 허용 안 하던데?”
“…….”
“꿈같은 게 필요하긴 한가? 다들 취업 얘기만 하잖아.”
민채로썬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만 물어보는 재경으로 인해 꿈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관뒀다. 민채가 젓가락으로 밥을 한술 떠먹는 것을 지켜보던 재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게. 이게 너희들의 시대구나.”
재경은 옛날의 민채 나이었을 때의 희도를 떠올렸다. 그때의 희도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금의 민채에게 있어서는 그 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언뜻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와 지금의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다 먹은 후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시간을 떼우던 민채는 지루함을 못이기고 의자를 밀어재꼈다. 희도의 방을 이곳저곳 살피다가 서랍을 열어보자 지금은 보기 드문 잡동사니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옛날에 있었다던 슬라이드 휴대폰이라던지, 라디오 테이프라던지, MP3라던지. 민채에게 있어선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이것저것 살펴보다 반대쪽 책상서랍을 열어보니 거기에선 특이하게 생긴 책인지 노트인지 알 수 없는 낡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음?”그것을 들어보던 민채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지?”
크기는 일반 책처럼 생겼는데 두꺼운 겉표지가 천인 거 같기도 하고, 노트랑도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직접 표지를 꼬맨 것인지 H, E, E, D, O의 알파벳이 ‘희도’라는 발음으로 나열되어 삐뚤빼뚤하게 꼬매져 있었다. 한참을 살펴보던 민채는 그것이 뭔지 뒤늦게 눈치 챘다.
“엄마 일기장?”
많이 낡았지만 알 수 있었다. 민채는 그 일기장 겉표지 한 장을 넘겨 보았다.
그 안에도 숫자와 영어 알파벳으로 ‘1998 나희도 펜싱 다이어리’라는 동그란 정 원의 스티커들이 붙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다음 장을 넘기자 왼쪽에는 대문짝만하게 적은 ‘올해 목표’라는 문구와 4가지의 목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장에는 풀하우스라고 적혀있는 문구와 여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옛날 만화책의 표지인 듯싶었다. 또 다시 페이지를 넘긴 민채는 다음 장도, 빠르게 그 다다음장도 넘겨보더니 경악했다.
“허, 이걸 손으로 다 썼다고? 이정도면 벌칙 아니냐?”
한참을 그렇게 페이지를 뒤적이다 이걸 직접 다 썼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맨 앞장을 넘겨보던 민채가 맨 첫줄의 ‘그 애’라는 단어를 보고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 애? 엄마의 구 남친? 와, 헐, 대박.”
민채는 비밀스러운 것을 발견한 것마냥 그대로 일기장을 덮어버리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지루했던 참인데 잘 되었다 싶었다. 민채는 그대로 일기장을 들고 방을 빠져나와 집 마당에 있는 하얀 벤츠에 걽어 앉았다. 지금부터 희도의 일기장을 정독할 예정이었다.
나는 토요일마다 그 애를 보러간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엔 눈이 빨리 떠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민채는 일기장 첫줄을 읽으며 제 엄마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1998년 7월.
입에는 토스트를 물고 집 문을 나서며 인사를 한 희도가 아치형으로 된 장미꽃 덩굴에 감싸여있는 하얀 대문을 넘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기분이 좋아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 달려가는 희도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때는 1998년 7월의 일이다.
거울을 보며 각자 머리빗으로 머리정리를 하는 부산스러웠던 반 여자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교실에 들어서는 희도를 보고는 웅성이기 시작했다.
“쟤 펜싱부 아니야?”
“수업 왜 들어 왔대?”
“시험 때만 들어오는 거 아니야?”
평소에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지 희도가 교실에 들어 왔다는 것에 대한 여자애들의 추측들이 쏟아졌다. 그러자 희도가 해맑게 웃으면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해주었다.
“수업 일수 채우러 왔다. 됐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 그렇게 추측하면 답이 나오냐.”
“1교시 영어야.”
희도가 책상에 가방을 걸며 앉자, 옆에 앉아있던 단발머리의 짝꿍 해진이 1교시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희도가 해진의 교과서를 한번 쓱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열심히 해. 쌤이 나 깨우라고 시키면 펜싱부라고 말해주고? 컨디션 조절중.”
희도는 짝의 친절을 무색하게도 책상에 팔 한짝을 길게 뻗으며 팔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응, 알겠어.”
해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희도의 말에 웃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닌 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엎드렸던 희도가 그새 팔에 기댄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제짝인 해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 되게 기분 좋은 날이거든? 푹 자게 도와줘라, 짝꿍?”
“왜 기분이 좋은데?”
“토요일이잖아, 헤헤.”
희도는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다시 책상에 얼굴을 박고 눈을 감으며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토요일. 유일하게 그 애를 볼 수 있는 요일이다.’
시간이 금방 지나 하교시간이 되었다. 바글바글한 인파를 뚫고 달려 나오는 희도는 빠르게 질주해서 교문을 빠져나왔다. 길 골목을 지나, 만화 책방을 지나가려던 찰나, 생각이 난 것이 있어 다시 돌아와 책방의 문을 살짝 열어 얼굴을 들이밀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풀하우스 11권 수요일에 나오죠? 한 권 빼주세요!”
‘물론 토요일 다음으로 기다리는 건 풀하우스다.’
한참을 달리다 한아은행이 보름은행과 통합이 되었다는 현수막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희도는 달리다 멈춰서선 자신이 들고 있는 통장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달렸다. 현재 IMF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상태였다.
-우리 미래의 기반이 될 한국 영화 사랑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
큰 길에는 사람들이 바글 거렸고, 시위라도 하는 것인지 어느 한 사람이 마이크를 붙잡으며 주동했다. 앞에 영정사진들을 들고있는 사람들을 지나쳤다.
-한국 영화가 미국에 비해서 경쟁력이 전혀 부족…….
인파가 빼곡히 들어차서 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사람이 많아 희도는 그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애를 써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백합처럼 흰 꽃들을 들고 서있는가 하며,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지나치려던 희도 앞을 막아 세워 흰색 꽃 한 송이를 들이미는 손으로 인해 멈춰서고야 말았다. 희도는 그 꽃을 받아들어 두 손으로 잡아 보였다. 여전히 먼 곳에서 마이크로 외치는 소리가 희도의 귀에 들려왔다. 희도는 받은 꽃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흰 꽃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꽃잎들이 바람에 타고 넘실넘실 흩어진다. 희도는 파란 하늘과 흰 꽃잎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햇빛이 유난히 밝은 날이었다. 희도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언가 잃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난 뭔가를 잃기엔, 너무 열여덟 이니까.’
희도는 금방 받은 꽃을 하늘 위로 높이 던졌다. 다른 꽃들과 같이 꽃잎들 사이로 넓게 흩어지는 희도의 꽃잎도. 희도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꿈, 동경.’
그렇게 한참을 달린 희도는 어느 학교에 들어가 뒤쪽으로 이어지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멀리서 무언가를 탁, 탁하고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도는 그 소리가 너무나도 경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가에는 미소가 더욱 짙게 번지기 시작했다. 희도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펜싱부의 창가였다. 의자를 밟고 창가에 매달려 펜싱부 안쪽을 들여다 보는 희도의 눈에는 바로 ‘그 애’가 보였다. 꿈이자 동경인 그 애가. 그 애는 천재라고, 희도는 생각했다.
작성 후기.
한동안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다.
그러다 최근에 재밌게 보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의 내용을 소설화 시켜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첫 편을 여러차례 돌려보며, 인물들의 대화는 최대한 빼먹지 않고 쓰려고 노력을 했고, 배경을 위주로 묘사를 하려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라마여서 그런 건지, 장면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연결하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내가 멋대로 대화 내용을 더 추가하기에도 그렇고.
무엇보다 독자시점으로 보아서 그런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적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는 그런걸 감안하고 '창작해서'써야 하는데도, 그렇게 되면 무언가 저작권과 드라마 내용을 각색해서 표절이라는 말이 떠돌까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연습용으로 쓰는 습작이라 생각하며 쓸 예정이었기에 문제가 되면 비공개 처리라도 하면서 연습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속 '드라마'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며 쓰게 되어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보이는 것만 쓰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드라마상의 내용 10분정도의 분량까지만 쓰고 그만두고 이렇게 후기를 올려본다.
사실상 드라마상의 10분정도의 분량 내용이었지, 거진 3~4시간을 걸쳐서 쓴 글이기도 하다.
어차피 더 이상 써봤자 내용 장면을 하나씩 다 쓸 것도 아니고, 연결해서 쓰기에도 힘이 들고, 보이는 것만 쓰게되면 의미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까지 쓰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어떤식으로 글쓰기 연습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겠지?
드라마를 소설화 하는거,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