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땐 나도 그랬어 - 5.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 같다.
먼저 보기전에,
답답한 고구마를 먹는 기분이겠지만 나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때는 14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그 사람한테 서운한 것들이 많았는지, 카톡을 하다가 티가 났었나 보다.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물어오셨다.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대화하다 자주 끊키는 느낌이 든다고 대답했다.
물론 바쁜 것도 알고있었고, 그래서 내가 이해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한것도 컸었다.
하지만 이분도 이분 나름대로 늘 바쁘게 일을 하시니, 나는 그저 잠자코 있어야 되는 것이 전부였던 거 같다.
그래도 그 바쁜 3개월동안 연락 한 번 없으셨던 것이 너무 속상했다.
내가 먼저 보내지 않는 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었으니까.
솔직히 의무까진 아니다. 그저 내 바람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만났으니 더 그랬다.
그럼에도 매일 연락하고 같이 게임하던 사이었기에 기다리진 않겠다고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그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분은 내가 귀찮지도, 밉지도, 싫지도 않으시다고 한다.
투정부리고 싶으면 투정부리라고 하신다.
그런데 내 자신은 그것들이 민폐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었다.
결국 혼자 쓸데 없는 생각으로 불신을 키워왔던 거 같다.
원래는 나랑 놀기 싫어서 바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귀찮아서 피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연락하는 것도 민폐이지 않을까.
정말이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었고, 그렇게 해서 결단을 내렸다.
추석부터는 한가해진다고 하셔서 기다리진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추석이 다가오자 그 기다림은 희망고문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연락한번 오지 않았다.
물론 내가 먼저 연락을 할 수는 있었지만, 먼저 연락해주길 바랐었다.
이젠 같이 놀 수 있다고, 게임하자고. 그렇게.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렇게 그 긴 연휴가 지나가 버린 후의 일주일 후였다.
나는 결심했던 말을 꺼내기로 했다.
이젠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글날 전날이었던 8일에 이젠 연락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늘 바쁜데 내가 계속해서 연락하면 불편할 거고, 귀찮을 거고, 어쩌면 내가 미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이젠 나도 그만 두겠다고 그렇게 보냈더니, 무슨 이별이라도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더라.
솔직히 이별까진 아니지. 나는 그저 내 안의 희망고문을 끝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분은 이젠 일도 좀 널널해졌으니 내일부턴 같이 게임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끝을 낼 생각으로 연락을 했던 거지, 부담을 주려고 연락한게 아니다.
게임이 하고 싶어서 연락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난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신경쓰지 않느냐며 괜찮다고 하신다.
이미 야근과 연차 기록된 것들을 보여주셔서 여전히 바쁘셨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괜찮다고 한다.
그게 너무 죄송했다. 계속해서 죄송했다. 또 민폐가 된 거 같아서 너무 슬펐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있었고,
그 문제의 14일 토요일에 그런 카톡을 받은 것이다.
역시나 3개월 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져서 그건 그거대로 서운해지고,
대화를 하다가도 끊키는 기분이 자주 들었던 거 같다.
하지만 역시나 바쁘면 끊킬수도 있고, 피곤하면 쉴수도 있으니 어쩔수 없다고 한다.
그건 나도 알고는 있지만, 그저 내 기분탓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하기에 나는 여전히 또 이해를 해드리지 못했구나 싶었다.
솔직히 우리는 연인사이도 아니고, 실제로 만난 사이도 아니어서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도 없는데.
역시 끊어내는게 정답인 거 같으면서도 아쉽기도 하고.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또 다시 매번 들었던,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 들으며역시 나는 선톡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했지만
왜 자꾸 그렇게 생각하냐며 꾸중을 들었던 거 같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되는 것일까.
8일에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꾸중듣고, 오늘은 선톡해서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꾸중듣고.
그러다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그분도 많이 답답하셨는지 정리를 해주시더라.
본인이 상황 설명을 여러번 했음에도 나는 서운함은 커지고 생각도 많아진다고.
내가 원하는 건 매일 연락도 자주하고, 게임도 매일 하고싶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걸 원하진 않았다.
바쁜것도 이미 알고, 어쩔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서운함이 커졌던 것은, 그 바쁜 3개월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는 것이다.
뭐하고 지내는지 뭐 하고 있는지, 안부정도는 물을 수도 있는데, 나만 그런게 궁금했던 건가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괜히 내가 먼저 안부를 묻게 되면 게임이 하고싶어서 묻는 것 같아서,
또는 귀찮게 하는 거처럼 보일까봐 참을때가 허다하게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그분도 그건 본인이 잘못한게 맞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난 역시나 사과를 받으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늘 죄송해왔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해주셨던 거처럼, 그분도 나와 같은 미안함과 내게는 그럴필요 없다는 그런 생각.
아무튼 또 맞춰주겠다고 한다.
실제로 아는 사이도, 연인 사이도 아닌 나를.
내가 보기에도 귀찮게만 했고 괴롭혔던 거 같은데도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본인이 잘못한 것이 맞다고 맞춰주겠다고 한다.
그저 친구관계라고 해도 이러면 민폐인 것도 알고,
상대방에게 귀찮게 구는 것도 맞지만 여전히 그분은 민폐도 아니고, 귀찮지도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너무 좋다.
나는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날 이후로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껏 이렇게까지 맞춰주려고 하는 분은 정말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귀찮아했으면 귀찮아했지, 아마 평생 이런 분은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미 나는 그분이 좋기는 해도 이대로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애초에 나랑 그분은 무엇이든 하나 닮은 것들이 없었으니까.
나와는 달리 인싸여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으시고, 술도 좋아하지만 나는 아니다.
밖에 나가면 기빨려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을 좋아하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집에 있는 것을 즐긴다.
집에서 할 거는 없지만 그저 집이 편안할 뿐이다. 게다가 나는 술도 싫어한다.
어느 하나 잘맞는 부분이 없다는 것에 서글픔이 크게 드는 거 같다.
이번 추석때 여동생이 결혼하겠다며 남자친구를 소개했었다.
솔직히 나는 여지껏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내왔었고, 남자에 대해 기피감도 약간 있었고, 관심도 없는 편이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중고등학생때에도 아이돌에 별 관심이 없을정도로 남자에 대해서는 혐오했으면 혐오했지, 1도 신경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혼할 나이가 다가와서 그런가. 점점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외로운데, 나중에 가면 더 외로워지겠지 하고. 내 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유튜브나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나랑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의 글을 볼 때마다
'남편'이라는 단어가 왜그리 부러운지 모르겠더라.
아무튼 여동생이 결혼하겠다고 남자친구를 데려온다고 했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얘도 남편이 생기겠구나. 동생만 생각해줄 사람이 생기겠구나.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해서 친구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만약 너랑 잘 맞는 것이 하나 없는 남자가 너한테 맞춰주겠다고 하면 어쩔거냐고.
하지만 역시나 내 친구는, 아무리 남자가 맞춰준다고 해도 잘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한다.
남자가 맞춰주면 본인도 맞춰줘야할게 있을 거라고. 맞춰주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을거라고 하더라.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지만 그렇다고 놓치기엔 아쉽고, 애초에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힘들었다.
이대로도 잘 지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대로도 괜찮겠냐고 계속해서 물어본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그 사람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세세하게 말해줬다.
나는 겁쟁이다.
한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쯤인가, 게임하고 싶다고 그분에게 선톡을 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5시간을 걸쳐서 술마시고 있었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 얘기도 했다고 털어놓으셨다.
그래서 어쩌다 내 얘기가 나온 것인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들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심장은 두근대고 어쩔줄 몰랐다. 이대로 고백하시면 어쩌지, 걱정도 됐었다.
고백을 하시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사이가 어색해지지는 않을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할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친구랑 술마시다가 내 얘기가 나왔고,
그 친구분이 '그런 사람이 어디있냐. 그럼 한번 만나 봐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걸 그대로 전해준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정말이지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솔직히 나도 그분에 대해서 호감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었다.
같이 연락하게 되면서 위로도 받고 자존감도 올라가며 회복되고. 그저 나날이 행복했었는데,
늘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의 행복보단 아주 나중의 일이지만 겁부터 먹었다.
나랑은 성격 자체가 달랐다. 나에 비해 친구도 많으시고, 노는 것도 좋아하시고, 일도 열심히 하시고, 술도 좋아하시고.
뭐든지 잘 즐기시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늘 피하고 도망가고 숨어있다.
사귄다고 해도 스킨쉽부터 난해였다.
안타깝게도 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남자 한 번 관심을 가지지 못해 스킨쉽 자체에 부담이 확 느껴졌었다.
나에게는 처음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아직 사귀지도 않았지만 만약 잘 돼서 결혼까지 가게 된다면,
그럼 하객들을 불러와야 할텐데 그럴 자신도 없고, 상견례 자신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도망치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그런 사람이 어디있냐. 그럼 한번 만나 봐라.'라는 말을 꺼내신걸 무안하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자연스럽게 넘겨 버렸다. 더 이상의 얘기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심도 같이 들었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넘겨서 다행이라고 뿌듯해 했었는데,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까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바보같은 짓이었다.
지금의 나였더라면 그 말에 대고, 날 좋아하냐고 오히려 되물어보고 싶을 정도니까.
친구는 내 마음부터 정하라고 하더라.
이미 마음은 확신한다. 하지만 결정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두려움은 큰 상태였다. 그렇게 일요일 밤을 새고 출근했다.
밤새도록 생각이 멈추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한 건지,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다.
그냥 대놓고 말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거절당하더라도 좋아한다고 전하고 싶다.
하지만 뒷일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거절당하면 이젠 연락도 못하고 같이 게임도 못하려나?
그렇게 오전내내 출근하고도 별에 별 생각을 해가며 점심먹고 사무실 커피사러 마트에 다녀올때 발목을 접질렀다.
안그래도 3개월 전에도 접질러서 발목보호대를 2개월동안 차고 다녔었는데, 또 접지르니 짜증도 나고 억울했다.
운동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자꾸 접지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났던 건, 그분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슬픈 기분을 전달하고 싶어서, 카톡을 보냈다.
너무 슬프다고. 몇개월 전에 발목 접질러서 보호대 푼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접질렀다고.
근데 정말 그분이 너무 좋았던게, 토요일에 했던 대화를 기억하시는 건지,
원래 답장 잘 안하시던 분이 틈틈히 답장을 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까지 맞춰주시는데 내가 그분을 안좋아하고 배길까.
그래서 뜬금없지만 그분에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별로 뜬금없지 않다고 하시더라.
그래도 정말 너무 좋다고 다시한번 전했다.
친구 말로는 그냥 친구사이로 받아들인 거 같다고 하지만, 친구사이로 받아들여도 상관 없었다.
그냥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한거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하다. 답톡이 계속 온다.
근데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은 없는 건지, 아무런 질문도 안하신다.
그렇다고 대화가 끊켜도 계속 답을 하신다.
평소의 그분이 아니라 새삼 이상했다.
하지만 좋았는데, 예전과의 온도차이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 내가 겁쟁이라 피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바쁜 3개월동안 마음정리를 하고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온전히 내 잘못이기도 하니 내가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나중에 무서운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는게 맞는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내가 정말 바보같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지금도 뜬금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한테 좋아한다고 매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 날 맞춰주고 노력해주시는 좋은 분 만나기는 정말 드물잖아?